워낭소리
“쇠락한 고향 닮은 아버지와 소 얘기 하고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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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소띠 해 초입,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리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15일 개봉)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팔순 농부와 마흔 살 소의 30년 우정을 담고 있다. 반짝이는 사금파리를 모아 하나의 그릇을 빚어놓은 것 같은 이 영화 앞에서 잔잔한 감동, 훈훈한 여운 등의 수사는 차라리 무색하다. “(영감은) 소에게는 잘해 주면서 내게는 잘해 준 게 없어.”라는 할머니의 지청구에 빙긋 웃다가도, 소가 숨을 거두자 “우리 가거든 같이 가면 될 건데….” 하는 장면에선 번지는 눈물을 훔치게 된다. 극장 밖을 나설 때는 워낭(소의 귀에서 턱으로 늘여 단 방울)의 정갈한 울림이 마냥 귓가를 맴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15년 동안 주로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이충렬(43) 감독. 막 산고를 끝낸 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그를 인사동에서 만났다. ‘워낭소리’는 15일부터 열리는 미국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세계인들과도 만난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자식으로서 좋은 모습 보여주지 못해 부모님에 대한 자괴감이 컸다. 돈도 못 벌고 결혼도 못했으니…. IMF사태가 터지면서 아버지가 화두로 많이 떠올랐는데, 나도 그런 흐름을 탄 것 같다. 나는 고향이 전남 영암인 촌놈이다. 유년의 기억 대부분이 아버지의 소 문화이고, 지금도 아버지가 농사를 짓고 계신다. 그래서 쇠락한 고향을 닮은 아버지와 그를 닮은 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상을 찾는 데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할아버지와 소를 만나게 됐나.
-방송 외주제작 PD로 지내다 2000년부터 프리랜서 독립PD 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이장, 면사무소, 부녀회장, 축협, 농협 등에 수소문을 했다. 그러다 2005년 이른 봄 경북 봉화군 축협 관계자가 전화를 해왔다. 봉화 하눌마을에 살고 계신 최원균(81) 할아버지와 이삼순(78) 할머니 부부를 만나자마자 ‘이분들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 과정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다.
-2005년에는 촬영과 동시에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 더 주안점을 뒀다. 그해 겨울 젊은 소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7년 4월쯤 촬영을 마무리했다. 후반작업에 1년 남짓 걸렸고, 얼마 전에야 최종본을 프린트했다. 만으로 3년쯤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애초엔 방송물로 기획했다고 들었다. 어쩌다 영화가 됐나.
-편집본을 모니터하는 동안 주변에서 “방송하기 아깝다.”, “영화로 가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많이 하더라. 2007년 말쯤 흥행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를 제작하기도 했던 고영재 PD를 소개받으면서 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영화를 최 할아버지와 이 할머니도 보셨나.
-프라이버시 지켜드리고 싶어서 극장으로 모시지는 못했다. 대신 DVD를 보내 드렸다. 할아버지는 보시다가 다른 일을 하셨다하고, 할머니는 끝까지 보셨는데,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노래 부분에서 자기 삶이 슬프다며 한참 우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요즘도 일하시나. 말 안 듣던 젊은 소는 이제 길들여졌나.
-할아버지는 몸이 편찮으시지만, 여전히 일하신다. 젊은 소도 말을 잘 듣는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소아버지 일을 하고, 젊어서는 소중개사 일을 해서 소 다루는 데 전문가다.
→소가 죽는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말이 있던데 맞나.
-아니다. 소가 죽을 때 혼자 가서 직접 지켜보면서 찍었다. 소가 자주 발을 헛디뎌서 넘어졌는데, 그 장면을 잡지 못했다는 말이 와전된 것 같다.
→귀 어두우신 할아버지가 소 울음소리만 들리면 고개를 돌리는 장면과 소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에 대해 작의, 연출이라는 시선도 있더라.
-소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돌리신 것은 사실 그대로다. 촬영 초반에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 일상에서 반복되는 공통분모를 알 수 있지 않나. 그것을 짧은 영상으로 편집해 넣었을 뿐이다. 소가 눈물을 흘리는 것도 실제 장면이다. 소와 이별을 해본 사람들은 소의 눈물을 다 봤을 것이다. 우시장에 가도 흔히 소의 눈물을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인데 흐름이 극영화처럼 너무 완벽하다고 보는 의견에는 어떻게 생각하나.
-날것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게 무조건 리얼리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분들 삶의 원형질을 가지고 장난치거나 속인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표현방법의 문제이지 본질의 문제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내레이션을 배제했는데 이유가 있나.
-할머니의 대사로 충분히 통하기 때문에 넣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레이션은 사족이라고 하더라.
→소가 진짜 마흔 살까지 살았나. 보통 소의 생물학적인 수명은 15세밖에 안 된다던데 신기하다.
-25~30세 소도 많이 있다. 축협 기록을 보면 최장수 소가 38세로 돼 있다. 할머니 말씀이 이 소도 장수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
→미국소 관련 시위 장면도 잠깐 등장하는데, 선댄스 관객들이 그 장면을 잘 받아들일지 염려가 된다.
-2004년 김동원 감독이 ‘송환’으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표현의 자유상’을 수상할 때, 인사말에서 부시 정권 비판을 했는데 기립박수를 받았다더라. 걱정하지 않는다. 물론 문화적 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다. 남편이 상전대접을 받고, 부모님이 자식들과 겸상을 하지 않는 등 시골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인 문화, 남존여비사상 등이 그렇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감수성은 우리와 다르지 않을 듯하다.
→영화를 돌아봤을 때 아쉬운 점은 없나.
-우직한 면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아버지를 곧 소’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소는 암소다. 그래서 소의 일생을 보여주는 것 같은 노래 ‘봄날은 간다’를 잠든 노인을 태우고 소가 걸어가는 장면에서 썼는데, 저작권과 비용 문제 때문에 빼야 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시를 쓰는 시인처럼 ‘느끼는’ 논픽션을 하고 싶다. 관객과 공감할 수 있다면 극영화도 상관없다. 소재나 장르는 따지지 않는다. 일상과 내면을 다루는 작품을 하고 싶다.
글 강아연 기자 arete@seoul.co.kr
사진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기사 입력 2009-01-10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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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도 님 감상평|OISOO 정겨운 게시판|
그 아들 세엣은 912년을 살았고
그의 손자 에노스는 905년을 살았고
그의 증손자 게난은 910년을 살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더라도
우리의 시간 개념으론
좀 허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서울대병원 해부학교수님이
저희 교회에 오셔서 하신 말씀 중에
바벨탑 이전의 화석에선
현대의 인간에게는 없는 내장기관이 있는데
그 기관이 사라진 후
인간의 수명은 급격히 단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소의 보통 수명은 15년이라지요
봉화의 최 노인과 한 삶을 같이한 소는
40년을 살았습니다
말년에 다리 불구인 최 노인처럼
절뚝거리며 농사일을 하는 소는
차라리 지장보살이거나
아담 시대의 원형질 같다는
느낌으로 왔습니다
최 노인은 소와 함께한 세월 속에서
소를 위하여
농약을 치지 않았습니다
추수도 낙곡을 염려하여 손으로만 하였습니다
소는 평생토록 정갈한 만찬을 먹었습니다
그는 무병장수하여
노동으로 주인에게 보답하였습니다
소 한 마리로 9남매를 다 키운
느려터진 최 노인의 삶은
화면 내내 잊혀진 그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식 하날 키우는데도
허리 휘인다는 우리는
분명 커다란 모순 속에 살고 있음입니다
사라진 내장기관을 잊어버린 채
벼가 아닌 것은 농약이나 제초제로 뭉개버리는
그리하여 나만 살아버려 나도 죽어버리는
급살맞을 윤회만 거듭하고 있음 입니다
소의 삶이 끝나는 날
워낭을 풀어주는 최 노인의 눈물은
가슴을 깊게 적시었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 마지막 소 농사꾼의 삶이
우리가 회복하여야 할 삶의 방편이고
사라진 내장기관의 발견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삼년 동안을 카메라를 들고
고집스레 찍어낸 양반이나
변하지 않는 최 노인 부부나
절뚝거리면 일을 하는 소나
다 한통속임이 분명합니다
일소가 없는 바쁘기만 한 세월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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