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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서울시청 앞 덕수궁 대한문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분향식’

전 대통령의 유서|대통령의 반성

노무현은 지지자들에게나 반대자들에게나 ‘투사’로 인정받아 온 사람이다. 그의 뛰어난 투쟁력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다른 점을 짚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유머 감각’을 힘의 원천으로 생각해 왔다. 보통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좌절을 거듭거듭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 그리고 승부의 고비에서 본질을 파고드는 담대함은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초연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봐 왔다.

그런 투사, 그런 유머리스트가 검찰이 들볶아댄다고 해서, 아끼는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해서 맥을 놓아버린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퇴임할 때까지 그의 ‘지지자’ 노릇을 한 일이 없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의 방법이 억지스러운 것은 혐의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봤고, 그래서 그의 지도력이 역경으로 보이는 상황을 통해 증폭될 것을 예상했다. 투사로서 그의 면모가 되살아날 기회가 무능한 정권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뉴스를 듣고부터 열다섯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겨서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일이다.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본다는 유서의 말씀, 투철한 유머리스트에게 기대할 만한 말씀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권 여사한테 그럴 수 있나?

대통령 되기 이전의 그의 행적에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배운 반면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에게서는 사람들의 배우려는 자세가 줄어들었다. 내가 보기엔 같은 사람이 같은 태도로 일한 것인데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 대통령 되기까지는 ‘승리의 길’이라 해서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대통령 된 뒤에는 ‘권력자’라 해서 질시의 대상이 된 것일까?

재임 중 어느 고비에서 자신이 계몽주의자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고 반성의 마음을 토로했다는 노 대통령. 그렇다 그는 국민을 다스리기보다 가르치려 한 사람이다. 대통령 자리에서 국정을 이끌어본 그가 하나의 세력을 일으키는 투쟁의 길에 흥이 나겠는가? 차라리 탁 놓아버림으로써 대통령으로서도 펼치지 못했던 하나의 큰 가르침을 던진 것 아닐까? 승리에만 집착하는 이 사회, 전술-전략에만 몰두하는 이 사회에 철학적 반성을 일깨운 의미를 두고두고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을 ‘자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자기 희생’의 의미를 더 많이 보고 싶다.

/김기협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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