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WETO, 빛과 그늘의 도시
SOuth WEstern TOwnships. 요하네스버그의 다운타운에서 남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소웨토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다. 한때 요하네스버그에 전력을 공급했던 발전소가 있고 거주민의 100%가 흑인인 이곳. 한 골목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둘이나 배출한 이곳에 지역연구를 다녀왔다.
소웨토에 가면
요하네스버그에 온 여행객이면 한번쯤 찾아보는 소웨토는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흑인을 분리 거주시키기 위해 조성된 마을이었다. 분리 정책이 불법화 된 지금 외지인이 찾는 소웨토에는 두가지 명소가 있는데, 하나는 헥터 피터슨 박물관이고 다른 하나는 만델라 하우스이다.
헥터 피터슨
1980년 5월, 대한민국은 공권력으로 자국민에게 발포한 역사를 갖게 되었다. 그보다 4년이 이른 1976년 6월, 남아프리카 역시 경찰의 발포로 시위 중이던 한 소년이 사망하는 역사를 갖는다. 당시 남아프리카 정부는 국민의 90%에게 6%의 백인이 사용하는 아프리칸스어를 배우도록 강요했고 흑인들은 시위했다. 아프리칸스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너가 정치를 장악했지만 경제활동에 사용되는 언어는 영어인 상황에서 아프리칸스를 배우는 것은 통치의 목적 외에는 하등의 쓸모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교육을 통해 흑인은 빈곤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자리를 얻고자 했고 정부는 통제를 원했다. 그 갈등의 중심에서 헥터 피터슨이란 13살 어린 남자 아이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소웨토의 비버리힐즈
소웨토는 작지 않다. 면적 150㎢ 안에 약 130여 만명이 살고 있으며 그 안에는 여전한 절대 빈곤이 그들 나름의 비버리힐즈와 섞여있다. 거주민의 40%가 실업 상태인 소웨토에는 우리나라 戰後의 마을을 연상시키는 구역이 있는가 하면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 주교가 살았던 집이 이웃한 구역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병원이 있고 한때 다운타운에는 전기를 소웨토에는 공해를 제공했던 발전소가 가동을 멈춘 채 역사를 증거하며 서있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사람을 실어 나르는 택시 스테이션은 황금의 도시 조벅으로 일자리를 찾으러 떠난 아프리카 각국의 흑인이 모이는 최대의 집결지로 오늘도 바쁜 태양 아래 뜨겁게 움직인다.
아프리카 최대 병원이라는데..
지금은 가동을 중단하고 번지점프대로 사용되고 있는 옛발전소
2010 월드컵에 대비하여 신축된 축구연습장.
소웨토의 상징인 양철 지붕으로 덮여있다.
유치원의 어린이들
아이들이 불러준 합창에 가슴이 먹먹했다.
비교적 깨끗한 골목
특수부위를 파는 가게. 위생상태가 손님을 부르기에는 쫌..
청과물 가게
팩우유 아니죠, 팩맥주 맞습니다.
Don’t drink and walk on the road, you may be KILLED.
마셔보라고 권하는 가이드님. 그닥 마시고 싶지 않은데..
왠지 정겹다. 어릴 때 놀던 공터 같고.
자전거 투어에 참여한 백인 관광객과 그를 바라보는 청년 백수
학교 너머 보이는 인공 산. 옛날 금광 개발 시 파낸 흙을 쌓아 올렸다 한다.
지금은 중국인들이 사려는 걸 안 팔고 있다고.
비버리힐즈에 견학 온 학생들
예쁘다..
빛과 그늘의 도시
햇살은 너무도 눈부시고 밝은데 그 태양 아래 빛과 그늘은 소웨토에서도 빈부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여전히 양철 박스에 살면서 수도와 전기와 화장실도 없이 구정물 흐르는 진창길을 오가는 주민과 그걸 보러 관광버스를 대절해 온 외국인이 같은 시대를 누리며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삶의 수준이란 있는 것일까. 이 나라 흑인 정부는 그걸 모르기 때문에 혹은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집권한지 17년이 넘도록 소웨토의 빈민구역이 남아있는 것일까.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걸 마셨기 때문이었는지도.
20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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