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믿다_ 이상문학상 작품집 제32회

2010년 나이를 서른두 해나 먹어 더는 새로울 것이 없을 것처럼 하루하루를 반복되는 일상에 끼워 맞추며 살아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나를 생경하게 하는 것이 있다는 건 몇 되지 않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2008년 책장에 끼워 둔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2009년이 그 마무리를 향해 치닫고 있던 즈음 펼쳐든 것도 아무런 기척 없이 저무는 한 해를 견딜 수 없어서였다. 면 다소 작위적일까. 때로 장편보다 부담 없고 너무 객관적이지 않은 읽을거리가 절실하게 필요해지는 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읽지 않고 꽂아 둔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여느 책들보다 빛나기도 한다.

가수 신승훈이 어느 앨범의 타이틀 곡을 발표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절절하게 가슴 끓는 리듬보다 담담하지만 오래 두고 들을수록 마음 한편이 아릿해지는 곡을 부르고 싶다고.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 씨의 ‘사랑을 믿다’는 꼭 그런 느낌이다. 일상처럼 담담하게 자주 다니는 단골 주점에 앉아 지나간 사람과 몰랐던 옛 이야기를 회상하는 그 글발이 두고두고 여운을 남긴다. 몰랐던 옛일을 뒤늦게 알아챈 어느 날, 실연을 극복하고 더는 사랑의 감정을 남겨두지 않은 사이가 되어 실연의 무게를 전이시키는 그녀의 이야기가. ‘사랑을 믿다’라는 제목이 사랑을 믿는다는 것인지 사랑을 믿다가 바보가 되었다는 것인지 아리송해지기도 한다.

이상문학상 작품집 한 권에는 다양한 색깔의 소설들이 풍성한 잔칫상을 마련하고는 하는데, 제32회에는 대상 수상작과 더불어 박민규 씨의 ‘낮잠’을 읽으며 그 풍성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길게 머리를 기르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잘도 재미있는 글을 쓰는구나 싶었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처럼, ‘낮잠’ 역시 이 작가의 놀라운 관찰과 표현을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사회적 비주류로 남아 그들만의 비루한 추억으로 묻힐뻔한 이야기를 재치와 해학으로 바깥으로 드러내는 작가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2010년 서른둘에도 겸손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여전히 차고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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