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식물
마음이 아릿하다. 마치 먼 기억의 책장에 덮여 잊혀진 유년 시절이 떠오르듯, 소설을 읽는 내내 어떤 영상이 끊김 없이 흐르고 있었다. 어쩌면 1970년대 후반의 이야기는 늘 그런 향수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집창촌, 음악감상실 같은, 동네의 청년들이 환경의 최면에 걸려 빠져나올 수 없던 몇 가지 장소를 거명하는 것만으로 그때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마음이 아릿하게 되살아 오는 것 같았다. 동사무소인지 어딘가의 탑에서 창틀을 째듯 긴급하게 울려 퍼지던 사이렌 소리. 비좁은 곳에서 땀 냄새를 숨기며 숨죽이던 한낮의 민방위 훈련.
해맑은 웃음으로 귀족 같았던 식물이 몹쓸 병에 걸려 반미치광이가 되었어도, 스스로는 자유와 만세를 찾아서 거침없이 하루를 살던 둘째 형이 부러웠을 것이다. 어느 날 유리같이 투명한 환상을 주었던 화실의 소녀와, 눈부신 봄비 내리는 캠퍼스 언덕에서 사랑이 아닐까 설레게 했던 스무 살의 추억. 창녀이면서 긴 생머리에 뜨개질을 하며 성급한 낮손님을 가만가만 재우던 젊은 여자까지, 소설의 화자를 좌절하게 하고 일탈의 힘을 응축시키던 그곳 장미촌이 낯설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어 공중전화 부스에 줄을 서고 십 원짜리 동전을 딸깍딸깍 넣으며 초조해하던 기억. 우연히 만나는 연습.
몸속 끝까지 남아있던 찌꺼기를 모두 태우고 유품으로 간직한 표면 매끈한 렌즈를 만지작거리며 오래된 마을을 혈혈단신 떠나는 그의 모습에서, 소설 한 편을 탈고한 시점의 작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절제되지 않은 환경에 휩쓸려 목적 없이 달려가는 미친 사회에서 한 발짝 떨어져 소설 한 권을 단숨에 읽었다. 나는 그래도 식물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휴가가 끝나고 내일이면 다시 피 흘리는 사회를 영리하게 살아가야 하겠지만 하루쯤 시간 내어 단숨에 읽으면 좋을 낯선 제목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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