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연대기 5: 십자군의 시대
만지케르트 전투로 투르크족이 비잔티움의 역사에 깊숙이 관여하리라 생각했던 건 편집으로 말미암은 착각이었다. 비잔티움 연대기 5권은 이제까지 읽은 다섯 권의 연작 가운데 처음으로 그 제목이 책의 내용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비잔티움 제국을 몰락시킨 것은 이교도인 이슬람의 투르크가 아니라 같은 그리스도 교도인 서방 국가들이었고, 그것도 성지 수호의 대의 아래 모인 십자군에 의해서였다. 200년 가까운 기간 십자군은 네 차례에 걸쳐 비잔티움 제국에 흠을 내고 결국 제국을 사분오열하였다.
십자군의 큰 뜻은 그 아래 모인 각 집단의 이해를 충족시키기엔 비현실적이었다. 그들은 마치 인도를 찾아 떠난 영국인 같았으며 대륙의 서부를 개척했던 미국인 같았다. 현실의 욕구를 포장할 수 있는 명분을 찾았을 때 인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집요하고 노골적일 수 있는지 십자군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역사의 굵직한 획을 긋는 동력이 되니 그 거센 흐름 앞에 비잔티움은 속절없이 떠밀려갈 운명이었다. 제국이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빛날 수 있었던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역사에 있어 거대한 흐름을 타지 못한 주체는 그들이 향유한 문명의 수준과 상관없이 스러지고 마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가정이 없는 역사에 비잔티움의 아쉬운 순간을 되짚는 것은 의미 없는 작업이겠으나, 그 안에서 오늘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역사를 찾는 이유이리라. 그토록 강성하고 부유했으며 문화 수준 높았던 제국이 모든 면에서 열등한 집단에 의해 유린당하기까지, 부패는 짧은 순간 정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역사의 거센 흐름 앞에 길을 터주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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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은 먼저 동 비잔틴 제국이 투르크족의 계속되는 압박과 약탈에 못이며 서 로마 제국의 교황 그레고리 7세에게 지원군을 요청한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당시의 성지였던 예루살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