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연대기 6: 피의 그믐달

오늘날 터키의 국기에는 ‘피의 그믐달’이 아로새겨져 있다. 비잔티움 제국을 있게 한 콘스탄티노플 성벽이 그 기능을 잃어버린 지금도 이스탄불은 경제, 문화적으로 터키의 중요한 도시이다. 인구 5만이 채 되지 않는, 바다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하나를 지키던 황제는 피의 그믐달이 자신의 유일한 영토를 뒤덮은 날을 어떤 심정으로 맞이하였을까. 핏줄의 명맥으로 유지된 것이 아닌 신앙과 사명의식으로 이어온 천 년이 자신의 시대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전쟁의 포화 속에 자신을 던지는 것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기 전에, 출장 차 터키를 다녀왔다. 그곳 사람들의 외모, 표정에서 투르크 민족과 그리스 민족을 구별해보고자 하였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곳을 로마 다음 제국의 수도로 삼은 이유를 찾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스탄불의 얼굴에는 그리스계와 투르크계가 섞여 있었고, 그곳은 지난 로마 제국만큼이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지리적인 위치에 있는 곳이었다. 그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 그렇지 못하였는지는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비잔티움 연대기 전 6권이 보여주는 비잔티움 제국은 아쉽다. 서유럽이 르네상스를 꽃피우고 그리스 로마의 학문적 성과를 이어갈 수 있었던 토양으로 비잔티움 제국을 손꼽고 있으나, 전 6권에 걸쳐 보여준 역사는 권력 다툼으로 소모되는 역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제국이 국제적인 위상을 잃고 망해가는 제6권이 이 책에서 가장 시대에 충실한 부분이 되었다. 그리스도교를 최초로 국교로 승인한 제국이 그리스도교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이교도에 의해 멸망한 것은 비잔티움 제국이 오늘날까지 감성에 호소하는 아이러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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