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빌 브라이슨은 미국인이면서 영국에 살고 있다. 학생 시절 친구와 유럽을 일주하였으며 20여 년이 지나 같은 코스를 혼자 밟았다. 북유럽에서 중유럽을 거쳐 아시아와 맞닿는 이스탄불까지 스물두 곳을 석 달 가까운 기간 좌충우돌하였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영어 이외의 말은 통하지 않았고 작가는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 주로 그 지역의 박물관, 미술관과 이름 없는 거리, 다방 등과 같이 풍부한 언어구사력이 필요하지 않은 곳을 다녔기 때문이다. 많은 돈과 긴 시간을 들여서 빌 브라이슨처럼 여행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빌 브라이슨처럼 여행기를 남기기란 쉽지 않다고 해야겠다. 그의 시선은 비교적 오랜 생명력을 지닌 것에 많이 머물렀는데, 가령 그 지역 사람들의 습성이랄지 거리의 소소한 풍경과 자연환경에 대한 것이 그렇다. 유럽이라는 큰 테두리로 묶인 곳을 각 도시별로 잘게 쪼개어 그 특징만으로 서로 구별되는 이야기를 엮어낸 것이 대단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버스표를 사고 식사를 주문하는 등의 사소한 일조차 쉽지 않았을 텐데, 시종일관 작가의 서술은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원서가 출판된 시점은 1992년이고 2008년,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되기까지 16년이나 걸렸다. 캐나다에서 번역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옮긴이마저 후기에서 말하기를 유럽과 미국 문화만의 코드와 열댓 가지 유럽어가 종횡무진하여 번역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글로 남기고자 하는 지역에 철저히 기반하여 그 고유한 색채를 자신만의 언어로 도드라지게 한 것이 작가의 작업이었다. 유럽을 통틀어 일관된 시점으로 개별 도시의 특색을 엮어낸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을 따라 그곳을 여행할 수 있을까. 아마도 고된 여정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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