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6: 동트기 전

만감이 교차하는 한 권이었다. 서초 패왕이 3만을 이끌고 천 리를 달려 한왕의 56만 군사를 흩어버렸고, 풍비박산 난 한왕이 그 와중에도 세력의 대부분을 회복하는 것이 6권의 대강이라면 그 대강을 점점이 장식한 것은 사수의 전투와 이후 동북을 정벌하는 한신의 전투일 것이다. 한바탕 봄꿈이 질그릇 깨지듯 와장창 부서지고 죽을 고비를 넘나들면서도 한나라의 가신들이 한왕을 저버리지 않은 것은 그의 리더십 때문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패왕도 한탄하였듯 허장성세로 급하게 불어난 세력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도 세상의 유능한 인재들이 기어이 한왕을 찾아들게 하는 것은 패왕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6권의 절반은 한왕을 쫓아내느라 숨 가쁘게 달리면서도 끝내 한나라의 세력을 궤멸시키지 못한 채 자만에 빠지는 패왕의 무용이 차지했다면 나머지 절반은 동북을 평정하러 떠난 한신이 군사로서의 재능을 멋지게 펼치며 채운다. 한나라의 대장군이 되어서도 어릴 적 큰 칼을 차고 성 아래 건달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갔던 일이 적군에게 계속 회자되지만, 한신의 판단과 행동력은 과거를 허물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군사를 부림에 있어 적군의 동정을 미루어 짐작하고 그 나아갈 바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결단하기란 한 싸움 한 싸움 생사가 걸린 전장에서 마치 면도날 균형처럼 자신할 수 없기 마련인데, 한신의 정확한 판단과 배짱은 그런 독자의 초조함을 무색하게 만든다.

결국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한왕의 리더십이란 모든 면에서 출중한 패왕에게는 없는, 스스로 부족함을 아는 것에서 비롯하는 것 아니었을까. 개인으로서 부족한 자질을 알고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을 나의 사람으로 부리는 것이 한왕의 리더십이 아닌가 싶다. 인재를 부르고 심지어 그들이 갖춘 능력을 적소에 배치하는 것조차 한왕의 몫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것은 한나라에서 대장군에 오른 한신도 전장에서 그 나아갈 바를 판단해야 하는 시점에 적진에서 인재를 채용하여 자문을 구한 일이다. 마치 한왕의 리더십을 카피한 듯한 한신의 용인술이 6권의 마지막 장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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