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8: 밝아 오는 漢의 동녘

리더가 되느냐 리더를 따를 것이냐의 문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늘상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이다. 어느 곳에 처하든 조직 안에서 일이 이뤄지고 구성원 모두가 수평한 관계인 조직은 존재하기 힘든 만큼 누군가는 조직을 이끌어야 하고 남은 다수는 리더를 따르게 마련이다. 평범하지만 사실이기에 더 강력한 조직 논리가 무수한 이익집단이 존재하는 현재가 아닌 지금으로부터 2천 년도 더 오랜 옛날에도 고스란히 존재했었다는 역사의 기록은 복잡한 오늘을 이해하기에 그 원형으로서 도움이 된다. 그 옛날에도 어찌 중국이란 거대한 땅에 항우와 유방만이 조직 대 조직으로 세를 펼쳤겠느냐마는 그것이 오히려 수천 년이 지나도록 인구에 회자되기까지 살아남은 역사적 힘의 증거일 것이다.

기승전결을 갖춘 마치 소설처럼 역사의 한 시대를 기술한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그 시작은 미약하나 끝으로 갈수록 창대해지는 유방의 세력이 있는가 하면 시작부터 화려한 배경을 등에 업었으되 짧은 영화를 뒤로하고 차츰 몰락하는 항우와 같은 세력이 등장한다. 무엇이 어느 세력을 더욱 살아나게 하고 무엇이 그렇지 못하게 하는가. 초한지 8권의 ‘동트는 제국’ 꼭지에 한왕의 부모와 처를 구하려 사신을 자처한 육가의 변이 인상적이다. 천명은 호기나 허세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남의 왕 노릇 하려는 이(王者)가 그렇게 된 까닭(所以然)을 갖추고 반드시 가야 할 길(王道)을 갈 때 그에게 천명이 정해진다는. 결과를 두고 보면 유방은 왕의 길을 갔기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육가의 변에서 왕을 리더로 대치해도 뜻이 통한다. 한나라 시대의 왕도가 천하 창생을 전란의 고통으로부터 구해주는 일이었다면 리더의 길은 조직을 살아나게 하고 번창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 조직이 커지는 처음부터 리더였던 경우가 있고 큰 조직에 구성원으로서 참여하여 리더로 성장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내가 처한 조직이 왕도를 아는 리더에 의해 꾸려지고 있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리더가 리더의 길을 갈 때 더 많은 인재가 모이고 세력이 커지게 마련이다. 한왕 유방이 패왕 항우와 달랐던 점이 거기에 있었고 그것은 비단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능력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임을 초한지 8권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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