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1: 짧은 제국의 황혼
얼핏 보기에도 권당 삼국지만 한 두께에 권수도 열 권이 되는 터라 책장 한쪽에 깨끗하게 모셔두었던 초한지를 읽어보리라 하며 용기 낸 것이 이달 초이던가. 마뜩잖은 글머리와 교과서처럼 전개되는 서장에 지루하던 독서가 둘째 장 들어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기대하지 않게 재미있었다. 한 달 가까운 날들 그 사이 아들이 태어났고, 아들의 출생 예정일과 결혼기념일이 지났고, 퇴근 후면 산후조리원에서 아내와 아들을 만나기에도 빠듯한 시간 가운데 오가는 지하철에서 매일 한 장씩 읽어 1권 아홉 장을 바쁘게 쫓아 내려갔다.
삼국지도 이런 재미가 있었던가. 역사 지식이라곤 돈 받고 팔라 해도 마땅할 것이 없는 밑천인데 하물며 남의 나라인 중국 역사는 사실 얼마나 거북한지. 서장, 황제의 세계가 그랬다. 누를 황자를 쓰는 황제의 세계에서 숱한 사람들이 단 몇 줄을 장식하고 바톤 체인지 하는 동안 독자는 초년 시절 진저리나던 국사 교과서를 떠올리며 이것을 외워야 하는 것인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초한지이면 초나라와 한나라의 유방과 항우 정도를 암기했던 밑천에 서장은 엄청난 도전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작 독후감 두 단락을 쓰면서 와, 재미있다 정도 밖에 쓸 줄 모르는 글발로 초한지 1권에 대한 감상을 옮기기엔 능력 부족이란 생각을 하며 슬슬 독후감을 마무리할 궁리를 한다. 본문의 일러스트가 수천 년 복사되어 너덜거린 채 전해지는 고대 중국인 화가의 것이 아닌 이용규라는 현대 한국인의 감각으로 꿈틀거리는 것이 좋고, 장마다 시대의 중심과 변방에서 미미한 시작을 펼친 인물의 에피소드가 전개되어 좋고, 그것들이 한 권 안에서 엉키고 맞물리며 유기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꾸려낸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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