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

파피용. 불어로 ‘나비’란다. 영화 빠삐용이랑 다른 거겠지, 했는데. 허걱, 철자가 같다. 의도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탈출’이라는 함의를 공유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은 인류의 지구 탈출기를 그린다.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아 헤매이다 겨우 찾아낸 보물.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께에 아랑곳없이 간만에 책을 쫓아가며 읽을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소 몰 듯 책을 몰아가며 읽느라 피곤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2008년의 독서는 거의 그랬다. 그러나 새해는 다르리. 별빛을 건너온 나비가 2009년 갓난 새해에 나를 소몰이 독서에서 탈출시켜 주었다.


두세 페이지씩 건너며 차츰 의미를 찾아가는 74개 꼭지의 제목을 따라 천재 과학자와 시한부 억만장자, 생태학자, 꿈을 잃었던 항해사가 우주를 향해 범선을 띄운다. 빛의 속도로 2년 넘게 떨어진 곳까지 1천 3백여 년 시간을 거슬러 이야기는 낯선 듯 익숙한 듯 전개된다. 마치 성경의 은유가 사실 은유가 아닌 실제 그럼직한 묘사이기라도 한 듯, 새로운 지구에 도착할 즈음엔 과학의 장치로 성서를 떠올리게도 한다. 정말 2광년을 건너온 최초의 인간이 공룡을 멸종시킨 것 아니야, 하는 유머까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읽은 것이라곤 파피용 말고는 ‘나무’가 전부이지만 매번 그의 탁월한 상상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꿈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는 요즘에, 마지막 희망은 탈출이라는 파피용호의 슬로건이 결국 이루어졌구나 하고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우주를 항해하는 내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도록 돛의 조작 키에 새겨진 꿈. 이야기는 세대를 거치면서 최초로 꿈을 새겨 넣은 이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한 세대의 수명 동안 주어진 한계라면 최선의 길은 꿈을 명확히 적는 것이리라. 여럿이 꾸는 꿈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고. 누군가 말한 것을 주워듣고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식이섬유를 마시고 누운 똥처럼 쑤욱 표현이 나오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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