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각들
우리 부부와 출산 예정일이 비슷하여 괜히 친근한 타블로가 2008년에 발간한 소설집. 제목을 보고 10대와 20대를 관통하는 연애성장소설일 거란 짐작은 10편의 소설 제목에서부터 보기 좋게 어긋났다. 조각난 당신은 사랑하거나 동경하는 이성이 아니라 타블로 자신의 유년을 관통한 성장통을 지칭하는 듯했다. 나로서는 한번 가보지도 못한 낯선 거대 도시 뉴욕, 그곳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 ‘당신의 조각들’에 모인 소설 10편의 심상을 마음에 간직하게 되는구나 싶었다. 음악, 대마초, 담배, 학교, 연예계, 인종 갈등, 정신병동, 질풍노도, 그리고 아버지.
그것들은 서너 페이지마다 채워진 뉴욕의 이미지와 뒤섞이며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청소년 타블로와 오버랩된다. 쉽게 따라 읽어가다가도 어느새 이미지의 궤적을 놓쳤다 싶으면 그것은 내게 낯선 도시의 경험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는데, 그 하나하나의 소재들이 어쩌면 유년의 작가가 건너온 고독의 일기 아니었을까. 1998년과 2001년 사이, 스무 살 전후에 안고 다니던 고민들. 스무 살 작가의 조각난 고민들이 뒤엉켜 툭툭 불거지고 하나씩 이야기로 풀어지고 있었다. 아, 그때 나는.
잘 떠오르지 않거나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들은 마치 없던 것처럼 지금에 와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그런 날들이 오늘을 사는 내게 아무 의미도 되지 못한 채 하룻밤의 꿈처럼 흐릿한. 부정할 순 없지만 애써 기억해내고 싶지는 않은 날들에 타블로는 ‘당신’이라며 책을 한 권 헌정하였다. 스무 살 그때 또 10대에 나를 관통하였던 조각들은 어떤 이야기로 오늘을 떠도는지. 이야기가 되지 못하고 유령처럼 등 뒤에서 무의식 노릇을 하고 있을 날들이 문득 그립다. 그날들을 풀 HD 동영상으로 재생하면 그때 이해하지 못하고 잊혀진 것들도 이제는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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