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2: 바람아 불어라
초한지 2권은 1권에서 소개한 여러 등장인물을 잠시 쟁여둔 채 굵직한 사건 몇 개로 큰 붓질을 시작한다. 진시황제가 쓰러진 자리를 덮고 이세 황제가 일어선 와중에 한 갈래 의군이 바람을 일으켜 영웅들을 부르는 내용이 2권에 잔잔하게 흐른다. 사마천이 사기를 통해 육국의 왕과 같은 반열로 대접하였다는 진승이 그 바람이어서 작가는 뒤따라 일어선 항우와 유방을 초한지란 소설에 담을 수 있었을까. 항우와 그의 삼촌 항량에게 한 장을 할애한 데 반해 유계는 유방, 혹은 패공으로 격상시키며 넉 장에 걸쳐 한 권의 시작과 끝을 채우게 한 것이 흥미롭다.
무장으로서의 능력과 권력 승계의 정통성 관점에서 보면 항우 쪽이 무협지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우월하다. 산을 뽑는다는 [力拔山] 힘이며 홀로 뛰어들어 피바람을 일으키며 적진을 소탕하는 무공에다 초나라의 명망 있는 집안이라는 배경까지 더해져 항우에게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한 장이 바람처럼 2권을 스친다. 반면에 한고조 유방은 무명인 집안에 무공이 탁월하지도 않으며 자기 고집대로 사람을 부려 욕을 보기도 하는 등 넉 장을 읽어갈수록 독자를 의아하게 만든다.
화려함 만으로는 오래가기가 어렵기 때문일까, 천하를 얻은 영웅도 초기에는 인간적이었음을 어필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협지처럼 화려한 항가는 무겁게 누르고 앉아 힘을 기르고 있고 좌충우돌 패공은 사람 좋은 그릇만 이곳저곳 돌리며 깨지고 다시 자란다. 그 시대 영웅이란 이랬었구나 싶지만 오늘날에 그대로 대입해보면 사회 복지 대상밖에는 아닐 것 같은 건 영웅의 면모를 이 시대의 경우로 번역하지 못한 내 그릇의 크기 때문일까. 유방을 읽으며 절대 내가 할 수 없는 한량 노릇이다 싶다가도 나와 같은데 하는 공감이 왕왕 일었다.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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