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반, 킹 샤카 센터
더반이 속해 있는 크와줄루나탈은 1800년대에만 해도 줄루라는 아프리카 부족이 지배하는 왕국의 중심이었다. 유럽의 문명에 맞서 줄루족의 문화를 지키던 샤카 왕이 1828년 9월, 나이 41살에 암살당한 곳을 다녀왔다.
구글로도 검색할 수 없는
음슐랑가에서 약 55km, 고속도로를 타고 50분을 달리면 크와두쿠자에 도착한다.
킹 샤카 뮤지엄을 찾으려고 화려한 구글링을 시도하였으나 찾은 것은 두쿠자 뮤지엄과 킹 샤카 센터라는 두 이름 뿐, 주소도 이렇다할 이미지도 찾을 수 없었다. 아프리카에 와서 구글의 무력함을 절실히 느끼며 내비게이션도 가르쳐주지 않는 곳을 찾아 무작정 차를 몰았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N2 고속도로를 타고 목적지보다 일찍 지선으로 빠져 이정표를 따라 가던 길에 히치하이킹을 하는 말쑥한 차림의 인도인을 만났다. 궁여지책으로 인도인 히치하이커에게 킹 샤카 뮤지엄을 물었더니 자기가 그 근처에 산다고 태워달란다. 아주 잠깐 고민하고는 바로 태워서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 Stanger를 향해 다시 17km를 더 갔다. 차 안에서 확인한 결과 본인은 경찰이며 주말에 친구를 만나러 나왔고 귀가하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던 중이라고. 경찰이란 얘기에 안도하며 그의 안내를 따라 어렵지 않게 킹 샤카 센터를 찾을 수 있었다.
줄루의 것이 우월하다
유럽의 문자와 화포 등 선진문물을 보고 난 샤카 왕의 반응은 이랬다고 한다. 줄루족은 구두로도 항상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문자가 필요없다. 화포의 유용성은 알겠으나 재장전하는 사이 헛점이 노출되어 줄루의 전사에게 당하게 된다. 킹 샤카의 유지를 받들어 박물관에 남은 유물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위대한 문화를 가지고도 그 명맥을 잃어버린 잉카제국처럼 기록이 없는 문화는 그것을 지키고 향유하는 구성원이 있을 때에만 존재한다. 아프리카의 영적인 능력이 변변치 않은 유물로 전시될 수는 없었다.
킹 샤카가 묻힌 자리에 세워진 기념비
킹 샤카가 암살되었을 때 앉아있던 바위
줄루족의 전통 가옥
킹 샤카가 고안한 손잡이가 짧은 창
줄루의 큰어른, 줄루의 왕
킹 샤카의 역사가 담긴 박물관 내부를 보다가 몰랐던 사실에 적지않게 놀랐다. 샤카의 후손이 대대로 지금까지 줄루의 왕을 역임하고 있던 것이었다. 1971년부터 8대째 왕을 역임하고 있는 이는 1948년생으로 이름이 Goodwill Zwelithini이다. 남아프리카 헌법으로 전통 리더쉽을 지키는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에야말로 필요한 제도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201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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