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9: 烏江에 지다

여러 가지로 싱숭생숭한 날이 계속되었다. 휴가를 주중 5일을 내면서 앞뒤 이틀씩 장장 9일을 쉬겠다고 했으나 한가운데 수요일에는 회사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으면 처리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정상 출근을 했고, 새로 부임한 팀장은 진부하고 고루한 영업 아이디어로 팀을 재건하려는 궁리를 하느라 사사건건 나와 맞지 않는 본인의 스타일을 강요했다. 업무상 다른 조직을 자주 접하면서 혹은 다른 직종의 친구를 만나면서 내가 속한 조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숨이 막혔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파편화된 사무실의 적막. 겨우내 덮은 이불을 몽둥이로 터는 듯한 답답한 골방 안쪽의 공기.
 
항우가 강동자제 스물여섯과 죽기로 한군에 뛰어든 것이 그랬다. 살기 위해 죽기로 덤벼드는 것이 아닌, 마지막을 직감해서 죽으려는 자의 허세. 결코 패배를 인정할 수 없어 창칼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적진으로 덤벼드는 항우는 그렇게 눈 녹듯 스러졌다. 나는 이입을 넘어 섬뜩한 미래를 본 것처럼 숨이 막혔다. 항우는 결코 개인의 자질이 부족해서 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우 자신도 절감하였듯 하늘이 항우를 망하게 하려고 한 것이지 항우가 싸움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구색을 갖추었다고 조직이라 할 수 없듯이 항우의 조직은 관중을 짓쳐들었을 때부터 이미 조직이 아니었다.

개인도 할 수 있고 조직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일은 조직이 하면 안된다.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문득 지친 모래알처럼 깎인 나를 실감했다. 즐거워서는 안되고 여유가 있어서도 안되며 오직 부지런히 갈고 닦아 연마되어야 하는 구색뿐인 조직의 일원으로서는 더 숨쉬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한 싸움 한 싸움 이겨갔으나 그 조직은 부서지고 닳아버린 항우의 부대처럼 내가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나 개인에 그쳐서는 머지않아 항우 꼴이 날 것 같았다. 한 싸움 한 싸움 이기지 못해서가 아니라 싸움을 거듭할수록 나의 편에서 멀어져간 대세를 보지 못한 것이 항우의 패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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