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강 밤배

모국어와 외국어가 주는 느낌의 차이일까. ‘하얀 강 밤배’라고 읽는 것보다 ‘しらかわよふね’라고, 원래 제목 그대로 읽으면 정말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다운 느낌이 난다. 세 편의 소설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요시모토 바나나의 한 권은 단편으로 모인 각자의 개인이 하나의 카테고리를 이루고 서로 보듬는다. 마치 서로 다른 곳에서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들이 작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줘 책 한 권을 엮어내게 하는 것처럼. ‘하얀 강 밤배’, ‘밤과 밤의 나그네’, ‘어떤 체험’에는 공통으로 죽음, 삼각관계, 잠이 키워드로 등장한다. 사랑했던 사람이 죽게 되었고, 1년 가까운 날 밤보다 긴 시간을 몽롱하게 지내다가, 삼각관계로 갈등을 빚던 사람의 어떤 계기에 의해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이야기.

죽은 사람이 스스로 숨을 끊었든, 사고를 당했든, 오래도록 연락이 닿지 않아 알아보니 죽었다는 등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남아있는 삶은 그 충격을 오래도록 지닌다. 현실에서는 어쩌지 못해 몽롱한 가수면의 상태로 밤과 밤을 걸어 다니는, 아직 살아있는, 혹은 살아남은 사람들. 하루라도 빨리 낮의 생활로 돌아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지금은 푹 주무시라는 작가의 말처럼 세상이 편안한 침대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건 도저히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 때문이면 좋겠다.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 다시 일상을 맞이해도 더불어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는 세상이었으면.

재미있는 점은, 삼각관계 혹은 한 남자와 두 여성 간의 사이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다. ‘하얀 강 밤배’에서는 의식이 없는 부인이 남편의 정부인 주인공의 꿈에 나타나 삶을 코치해준다. ‘밤과 밤의 나그네’에서는 죽은 오빠와의 사이에 아이를 가진 미국인 여자친구와 오빠가 일본에서 죽기 전까지 애인 관계였던 사촌 언니가 오빠의 죽음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어떤 체험’에서는 한 남자를 두고 주인공과 동거하던 다른 여인이 파리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죽은 후 영매를 통해 주인공과 화해를 한다. 사랑하는 친구, 오빠, 동거녀의 죽음이 힘에 겨운 여인을 다시 깨어 살게 하는 존재는 한때 사랑인 줄 알았던 혹은 현재 몸을 섞는 남자가 아니라 감성을 교감하는 동성이라는 설정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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