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_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고, 드문드문 피어나는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서 과연 무엇인가 읽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자책이 들어 블로그를 두드린다. 소설을 읽는 것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언제 어느 신문 귀퉁이에서 어느 작가가 남긴 ‘소설을 읽으면 모르는 사이 무엇이 쌓이고 창의력이 생긴다.’ 라는 말에 깊이 믿음을 두기로 하고 소설 읽기를 저어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 부끄럽게도 – 그 숱한 글을 써댔음에도 – 부족한 상상력 때문에 곤란했던 순간이 여전히 얼마나 많은지. 순간적인 기지가 요구되는 건배사 제의라든가, 심지어 아들 유치원 참여수업에서 ‘가을 하면 생각나는 것은?’ 이란 질문이 학부모에게 떨어졌고 살짝 긴장도 했었다. 주어진 시간은 짧고 집중하도록 그냥 두지 않는 제반 환경에서 최선의 선택은 단편인 바, 지난 ‘모나코’ – 방금도 ‘모로코’라고 쓰고 아차, 싶어 ‘모나코’라고 고쳐 썼다. – 를 읽으며 파악한 최근의 독서력을 감안, 책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 가운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잠’을 집어 들었다. 글 반 그림 반으로 작가의 말까지 더하여 총 99페이지, 화자는 오로지 서른 살의 기혼 여성으로 어려울 것 하나 없는 소설을 읽으면서 수면욕에 저항하기 위해 무던히 애쓴 결과 단 한 번으로 완독을 했다.
나는 이 소설을 굉장히 위험한 부류로 분류하기로 했다. 서른 살에 벌써 학생을 자식으로 둔 아이 엄마는 남편마저 동네에서 잘 나가는 치과의사이다. 매일의 일과는 아침 점심 저녁 식사준비와 집안 청소, 오후 수영강습이며 가끔 시어머니가 방문하는 정도는 부담없이 대응하는 정도의 유연성을 갖춘 그녀는, 어느날 가위에 눌린 이후 잠을 자지 못한다. 잠을 자지 못할 뿐, 수면 부족으로 인한 신체 기능 저하는 전혀 없이 오히려 더 건강한 신체와 정신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그녀는 러시아 문학을 깊이 탐독하고 낮에는 마시지 않는 브랜디를 홀짝인다. 깊이 잠들어 업어가도 모를 듯이 잠에 빠진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세상에 때가 묻지 않은 아들의 잠자는 표정과 닮았음을 깨닫고 거부감을 느낀다. 남편의 얼굴이 추해졌고 그것이 전폭적으로 자신을 지지하거나 아내와 공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남편의 이기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무수면 상태가 보름을 넘기는 동안 잠이 없는 밤의 시간에 외출을 반복하기에 이른다.
작가는 화자를 통해 ‘잠’이란 깨어있는 의식과 몸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며 차마 정리하지 못한 생각을 꿈의 형태로 배설하는 수단으로 정의하고, 잠이 필요없는 화자는 그러므로 루틴한 삶이 복에 겨운 케이스일 거라고 나름 정의했다. 이런 나의 추정을 결말에 이르러 확고하게 지지하게 되었는데, 몰고 나간 자가용 안에서 일탈을 추억하며 생각에 잠긴 여자를 갑자기 나타난 괴한 둘이 좌우로 뒤흔들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어쩌면 그녀는 너무 깊이 잠이 들어서 제 정신이 아닌 채 꿈을 꾸듯 살아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면을 위험한 꿈의 상태에 할애한 이 소설은 자칫 결말의 임팩트를 놓친 채 화자의 생각을 수긍하며 동조할 가능성이 있고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가정주부가 읽기에는 매우 위험한 소설이라고 단정하는 이유이다. 삼성전자 전략마케팅팀에서 지역 판매담당을 하는 남편을 둔 주부라면 특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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