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4: 서초 패왕
아, 드디어. 저 간악한 진나라가 망하고 그 이름도 당당한 항우께서 서초 패왕이 되셨다! 스물일곱에 빛나는 혈기로 나이만 먹고 어리석은 자들을 때로는 지혜로 때로는 완력으로 드디어 다 물리치셨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초한지의 붓끝은 유독 항우에게 엄격하고 유방에게 너그럽다. 항복해 온 장함의 20만 대군을 산채로 벼랑에 묻고 관중을 장악한 후 초나라로 금의환향한 것이 어찌 미욱한 소치였겠는가. 그는 그만큼 강했고, 자신이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젊었다. 스물일곱의 나이로 천하를 발아래 거둘 만큼 한 명의 무사로서도, 군사를 이끄는 장군으로서도 세상에 다툴 자가 없는 항우가 삼가고 조심하는 성격이었다면 오히려 역사에 길이 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가지로 정진했던 자질이 시대의 파도를 타 젊은 나이에 대업을 이룬 항우는 오랜 세월 남루했던 범증이나 한신 같은 주변 인물에 대비되어 더욱 강하게 빛난다.
대장부란 마땅히 저래야 하는데! 항우를 보면 유방이 진시황제의 행차를 보고 그 위엄과 영화에 감탄하여 중얼거렸다는 이 말이 입가를 타고 새어나온다. 한번 큰 뜻을 품고 크게 말을 달려 스물일곱쯤이면 천하를 발아래 거두어야 하는데. 내 나이 벌써 서른둘이 되었건만 비루함은 날로 더해지고 날로 끼니 걱정이나 하고 앉았으니 항우에 비할 바가 크게 못된다. 눈앞만 보고 살아오다 어느새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다.
초한지를 읽는 요즘 나의 진로는 엔지니어였어야 했다 하는 생각을 더러 한다. 나만의 유니크한 코어 컨텐츠를 생산하고 그것으로 천하를 제패하려면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서는 안되었다, 하는. 한자를 가르치는 어느 강사가 제자들의 권유로 만들었다는 아이폰용 어플리케이션이 교육 카테고리에서 다운로드 3위를 차지하고, 문자메시지도 보낼 줄 모르는 그가 현재 유료 어플리케이션을 기획 중이라는 뉴스에 더 침통해지기도 했었다. 아, 나는 무엇을 생산하여 천하를 제패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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